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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운주사

 천불 천탑 운주사

 

 

자식을 낳아 키워봐야 부모 마음을 알게되더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반백을 넘어서도 부모의 무한한 사랑을 다 깨닫지 못하는게 사람인가 보다...

부모는 자신의 심장을 도려 내서라도 아픈 자식을 낫게 하고프리라..  

산악회 회원의 스물한살 둘째딸이 뇌출혈로 쓰러졌단다..

뇌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아직 가수면 상태라, 예후를 단정하기 힘든 상태인가 보다.

광주로 문병을 갔다... 중환자실에 있는 아이는 보지 못했어도 벌떡 일어나서 산으로 들로 달려다닐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집으로 오는 길에 기분도 그렇고 해서, 비가 흩뿌리는 운주사를 찾았다...  

 

 

천불산 다탑봉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불교의 깊은 혼이 서린 운주사는 우리나라의 여느 사찰에서도 발견 할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불가사의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기씩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다

 

 

지금은 석탑 17기, 석불 80여기만 남아있어 역사 속에서 끝없이 유실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건시대와 창건세력, 조성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확증을 밝혀내지 못하여

운주사 천불천탑은 여전히 불가사의한 유적으로 남아있다.

 

 

 

 

운주사 불상들은 천불산 각 골짜기 바위너설 야지에 비로나불을 주불로 하여 여러기가 집단적으로 배치되어있다.

크기도 각각 다르고 얼굴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이 인상적이다.

민간에서는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라고 불러오기도 했는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석질이 잘 바스라져서 화강암질의 강한 대리석보다 더 고도의 기술을 습득한 석공이 아니면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 석질로 빚어만든 탑이 이렇게 수많은 세월의 풍상을 버티어 전해져 오는 것을 보면

석공의 기술이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는데는 반론이 없을 듯 싶다.

 

 

바위너설 안에 모셔져 있는데 자세히 관찰해보면 풍우를 피할수 있게 바위 너설 위를 인공적으로 다듬어 낸 흔적을 엿볼수 있다.

바위너설이 실내의 법당 역할을 훌륭히 해낼수 있도록 조성한 듯 싶다.

다른 곳의 불상 보다도 그 생긴 모양이 특이하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가 인상적이다.

그저 우리 이웃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팔작지붕 형태의 돌집으로 그 안에 두분의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다.

두분의 석불은 남과 북을 정확히 바라보고 있으며 
자세히 보면 남북의 문설주 위아래에 구멍이 뚫어져 있는데 닳아진 것이 돌문이 달려있어

예불을 볼때는 열고 닫았을 거라 여겨진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돌문을 열고 닫을 때 조정의 인재들이 죽어나가 세상이 시끄러워

도선국사의 아내가 이 돌문을 떼어 영광 칠산앞바다에 내다버렸다한다.

두분의 불상이 거대한 돌집 안에서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는 채로 조성된 것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와불아래 시위불로 불리는 석불 입상이 있는데

운주사 일대의 석불 중 가장 전형적이며 특히 운주사와 관련된 설화의 중심부분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유일한 형태의 와불이다.
이는 열반상(부처님이 옆으로 비스듬이 누운 상)과는 다르게 좌불(앉은 모습)과 입상(선 모습)으로 자연석 위에 조각된 채로 누워있다.

이렇게 좌불과 입상의 형태로 누워있는 부처님은 세계에서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이 부처님은 좌불 12.7미터, 입상 10.26미터의 대단히 큰 불상이다.

나침반을 갖다대면 거의 정확히 남북으로 향하고 있어

이 천번째 부처님이 일어나면 곤륜산의 정기를 이 민족이 받아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지상 최대의 나라가 된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북두칠성은 농사의 풍요, 생명의 관장, 죽은 영혼이 돌아가는 별로 믿었다한다.

원시시대 고인돌 관뚜껑, 고구려 장군총, 무용총 무덤안의 천상도 북쪽에도 북두칠성이 정확히 찍혀져 있다.

민가의 할머니들이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놓고 새벽에 기원을 드릴 때 북쪽 하늘에 뜨는 별이 바로 북두칠성이다.

불교에서도 우리 민간 신앙을 받아들여 삼신각 혹은 칠성각을 짓고 거기에다 모셔놓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민속신앙들을 수용해 내어 불교가 우리화 되어온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직접 북두칠성의 별을 표현하여 제작한 예는 어디에도 없다.

 

 

 

 

 

 

 

 

와불을 세우는 작업..

이미 열세분의 와불이 세워져있고, 맨 좌측에 누운 와불을 세우는 작업 중이란다.

힘만 좀 되면 세워 보고 싶었으나, 참아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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