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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방

왼골에 두고 온 선글라스

왼골에 두고 온 선글라스

 

일   시 : 2010년 7월 10일 (토요일)

산행지 : 왼골을 올라 토끼봉

코   스 : 의신 - 삼정마을 - 이현상 격전지 - 빗점골 - 왼골 - 토끼봉 - 명선봉 - 명선남릉 - 삼정마을

산행 거리 : 약 13km (소요시간 : 8시간 30분)

함께한 이 : 청산님, 김정란님, 우리 부부 내외 총 4명

 

주말이면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여름에 비오는거야 내 뜻과는 상관없이 어쩔 수야 없다지만

주말에만 겨우 시간을 낼 수 있는 나로서는 장맛철이 아쉽기만한데...

 

이번 주말은 박산행을 하기로 청산 형님과 약속을 했었는데,   음...또 비라.....

청산님이 전화를 하셨다.

"비가 온다는데, 그래도 박산행 가세..."

"형님, 비오면 박하기 귀찮아요... 기냥 당일로 다녀 옵시다.."

"그럼, 어디로 갈까?....왼골로 올랐다가 산태골로 내려 오까?...""그렇게 합시다..." 

 

박은 아니라도 일사천리로 모든게 마무리된다.

승용차 한 대에 빈자리가 둘이라..

번개 모집을 했더니, 산에 입문한지 얼마 안되는 김정란 회원이 번개처럼 가겠다고 답장이 온다...

 

 

 

 

 

삼정마을 깊숙히 차를 내려 놓고서 커다랗게 가로막은 철제 대문을 넘어선다.

"이리오너라" 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오히려 뒤를 돌아다 보게 되는 벼룩만한 좁디 좁은 간땡이... 

계곡을 건너다 튀어나온 바위에 정면으로 왼 무릎을 부딪힌다...

눈물이 핑돌고, 옷을 걷어보니 퉁퉁 붓고 피가 난다. 무릎을 구부릴 때마다 통증이 심해서 하산까지 할 수 있을까 혼자 걱정을 해 본다..

  

 

쌍폭을 지나며 어김없이 감탄의 외마디가 쏟아져 나오고...

분단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이현상 격전지를 지나면서

좌나 우나 편협된 정치이념이 만들어낸 쓰라린 아픔의 역사를 생각케 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휩쓸려가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부림친들 아무런 의미도 소용도 없다는 걸 꺠달았을떄

좌절하고 절망하였을 민족의 소시민들의 피눈물을 다시한번 새겨본다...

"다시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바르고 곧은 길만 가는 것이 인생에 많은 즐거움을 주지는 않는가 보다.

가끔은 스쳐 지나는 인생의 곁길들이, 뒤돌아 보니 의미없이 허비한 헛된 시간만은 아니였다고 자위해 본다.

가끔은 지리산 속 살을 헤집듯이 이 길 저 길로 헤메고 다니면서, 혼자 인생의 곁길을 생각해 본다.

 

 

 

 

 

 

 

 

 

 

 

 

 

 

 

 

 

 

간간히 계곡을 좌로 우로 건너고, 800고지에서 한차례 알바도 해 가면서...

간식타임에 오늘 처음 지리산을 경험하는 김정란님이 모자에 걸어 놓은 선글라스가 없단다..

큰 맘먹고 장만한 거라는데.....

함께 가자고 문자를 보냈던 내가 무안해지는데, 어디쯤에서 잃어 버렸는지도 몰라서

험한 왼골을 내려 갔다 올 수도 없고...

청산님이 지리99에 분실물 신고를 하시겠단다...

내 생각엔 되 찾을 확률 1% 미만이라 생각했다...

 

 

어느 구름 한조각이 비를 내릴지 알 수 없듯이 우리네 인생도 꼭 그러하리라.

잔가지에 겨우 달라 붙은 콩만한 작은 잎사귀도 영롱한 빗방울을 달고 서서

영롱한 빛을 발하는 모습은 마치 옥색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듯 하다.

 

 

 

 

 

 

 

 

 

 

 

 

총각샘 근처에서 산태골로 내려 서야 하는데,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았던지...

들머리를 놓치고 명선봉까지 직진...

명선봉 조망은 꽝이다...

두껍게 낀 비구름 사이로 잠깐 반야봉이 보이다 사라지고..

 

 

 

 

 

 

고도가 순식간에 내려가는 급격한 내리 쏟는 하산길

아침 나절에 찧은 왼무릎이 말썽이다.. 발을 내려 놓을 때마다 통증이 느껴져 후미로 쳐진다..

 

 

고개만 들면 보이는게 하늘인데 그 하늘마져 보지 못하고 사는 인생...

이루기 힘든 소원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바랄 수 없는 희망을 갖자는 것도 아닐진데,

너그럽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짙은 구름 걷어내고, 푸른 하늘을 한 번 올려다 바라 볼 일이다.... 

 

 

 

 

삼정마을에 도착해 보니 청산님이 눈에 익은 차량들을 알아본다

오늘 하루 당초 계획보다 하산길이 쉬운길이 되었지만

아름다운 원시의 숲에서, 가뿐 숨을 몰아쉬고 지리의 자연의 숨결을 호흡하면서

지난 20여년의 흡연에 찌들린 몸속의 노폐물을 뽑아낸 건강하고 즐거웠던 산행이었다.

 

 

일요일 집중적으로 폭우가 퍼붓자 집사람과 보성 율포로 놀러 왔다.

청산햄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어~이! 선글라스 찾았다네..." 

청산햄이 99카페에 분실물 신고를 했더니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정말 기적과도 같이 우리 바로 뒤에 왼골을 오른 99팀이 있어서 선글라스를 습득했다는 소식을 카페에 올렸단다.

99팀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 드린다...

가격의 고하를 따지기 전에, 주인 손에 들어 오게된 과정이 신기하고 고마울 뿐이다..

덕분에 어께에 힘주고 큰기침 한번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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