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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방

천왕봉 눈꽃 산행

천왕봉 눈꽃 산행

 

일   시 : 2010년 12월 26일 (일요일)

산행지 : 지리산 천왕봉

코   스 : 중산리 - 자연학습원 - 법계사 - 천왕봉 - 제석봉 - 장터목 - 중산리

 

 

올 겨울은 유난히도 더 추운 것 같다..

끝도 없는 인간들의 욕심이, 자연을 예상키 힘든 존재로 만들고 있는건 아닌지...

덕분에 눈산행을 즐기는 산꾼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날씨겠지만...

그런 눈내린 겨울 지리산은 항상 산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한겨울 강추위 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 그러하리라...

 

 

 

 

지리산에서 눈도 보고 종산제도 해야하지 않겠냐는 이장의 제안에 동반산행을 약속했다..

토요일 진주에 들러 몇군데 관광도 하고, 바로 중산리 턱밑에 숙소를 정했다.

늦은 밤까지도 날은 맑았고, 습도도 거의 없어 눈이 있으리라는 기대는 아예 접고

이장한테는 눈도 볼 수 없을 것 같은데 오지 말라 했다..

 

방바닥 구들이 너무 뜨거워 창문을 열면 황소바람이 창문을 부술 기세다...

눈도 없는 겨울산을 찬바람 맞고 오르려니 맘이 심란하기도 하고,

혹여 상고대를 볼 수 있을까 싶어 덕유산 공단 관리사무소에 연락했더니 거기도 눈은 없고 춥기만 하단다..

 

 

 

 

학교에 가까운 아이들이 지각 하는 법, 

지리산 턱밑에 숙소를 정하니 게을러진것인지, 늦은 아침을 먹고 배낭을 정리하고 보니 벌써 8시가 넘었다.

창문을 열고 상봉쪽을 내다봤더니 말간 해가 떠오르려하고 바람도 잔잔하니 날씨는 쾌청 그 자체다..

전북지방은 폭설에 지도가 하얗게 변했다는데.. 오늘은 눈 구경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다..

 

 

 

 

해가 중천에 뜰 시각이건만 산자락을 넘나드는 운무로 주변은 온통 잿빛이다..

중산리 주차장에는 법계사가는 미니버스가 산객을 기다리다 시동을 켠다.

저 차를 놓치면 또 얼마의 시간을 기다려야할 지 몰라 배낭을 들고, 눈에 보이는 장비를 손에 들고 허겁지겁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작은 정성으로 보시를 하고....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산객이 버스에 오른다..

오가는 대화들 사이로 구겨진 몸을 하고서, 다리 하나도 오무릴 수 없는 자세로 자연학습원에 도착한다..

 

 

 

 

 

 

거친 바람에 황소가 날아간다는 말이 있다.

희끗희끗 눈발이 비치지만 아직 상봉의 눈꽃이 있을지 의문이다..

법계사 못미쳐 바위위의 실눈에 걸음이 자꾸 미끌린다.

잠시 더 오르자 발이 푹푹빠지는 눈속에 아이젠을 착용하고서야 산행이 가능했다..

상고대의 작은 기대를 갖게한 지점...

 

로타리대피소에서 잠시 쉬면서, 덕유산에 갔을 것 같은 이장에게 전화를 했다...

천왕봉 도착 10여분 전 이란다...

결국 같은 길을 걸어온 셈인데, 그럴줄 알았다면 같이 출발했을텐데.... 

상고대가 장관이라는 이장의 말에 괜히 맘이 바빠진다...

 

 

 

 

 

 

 

 

 

 

 

 

 

 

 

 

 

 

 

 

 

 

 

 

사위가 고요한 산자락을 자분자분 걷는다.

눈부신 설국 풍경에 두 눈이 호사를 누린다...

잠시 여기서서 눈을 한번 감고 깊게 쉼호흡해 보리라..

속세에서 선계로 접어드는 경계선을 우직한 소걸음으로..

마치 바닷속 산호초 군락을 걷는 느낌이랄까..

 

 

 

 

 

 

 

 

 

 

어느 곳에도 푸른 하늘은 없다. 잿빛 화선지에 흰색 눈꽃과 눈짐작이 가능한 경계선만이 있을뿐...

 

 

 

 

 

 

 

 

 

 

 

 

 

 

 

 

군데군데 서있는 정상을 향한 이정표..

기세좋게 인간들을 몰아세우는 그런 자세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정도 추위에 움츠릴 자세는 더더욱 아닌것 같다..

얼마 동안 흰 눈 사이를 발자욱 찍다가, 하산하라는 이정표를 따라 다시 되돌아 나가는 인생의 그것과 다를 것도 없다..

 

 

드디어 나타난 천왕봉 정상..

상봉을 넘나드는 세찬 칼바랍과 눈보라에 잠시 서 있기도 힘겹다..

추위에 얼어 벌개진 얼굴을 하고서는 바로 제석봉으로 하산..

뒤돌아 보건데, 이제 이 눈은 내년 3월까지는 녹지 않으리라..

탄탄한 장수의 갑옷처럼...

 

 

 

 

 

 

 

 

 

 

 

 

 

 

 

 

 

 

 

 

 

 

늘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오가는 산꾼의 모델이 되어준 고사목도

슬슬 그 자리에서 지워져가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세상만물을 길러낸 겨울 숲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뽀드득거리는 눈 밟는 소리와 함께 어린 시절 새하얀 기억을 더듬어 보자니...

고개를 내밀고 깨금발을 서면 금새 하얀 권두운을 타고서 멀리 하늘을 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제석봉 안부에 들어서자 이 곳도 그야말로 설국..

형상은 사라지고 형태만 남아, 마음은 화선지 속을 헤메며 동양화의 어느 숲길을 걷고 있는 듯 하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지고, 나무와 바위의 구분도 모호해진 그야말로 흰색으로 통일된 수묵화의 풍경 그 자체다..

 

 

 

 

 

 

 

 

 

 

 

 

 

 

 

 

 

 

 

 

잠시 눈덮인 나무 사이로 파란 하늘이 빛난다..

 

 

 

 

 

 

옷을 벗은 고사목들이 눈을 뒤집어쓴 채 지리산을 호위하는 호위병처럼...

뼈대 있는 마을 입구 정승처럼 우뚝서 있고..

 

눈 밭을 날리는 낙엽들은 이리저리 부대끼다 잠시 바람이 자면 눈밭에 내려앉아 한소끔 쉬어가기도 하고..

이 모진 한파 속에서도, 새 봄을 기다리는 겨울 숲에는 생명이 살아가는 원리가 담겨있다.

 

 

 

 

 

 

천년을 살거라고 자신의 키보다 더 깊이 뿌리를 밖고 서있는 알 수 없는 저 나무의 생명의 깊이..

다시 저 천년의 나무를 닮고 싶어하는 인간의 모습..

 

봄부터 줄기와 가지를 타고 세월의 풍파를 덤덤하게 받아들여온 자연의 모습을 보여 주려는 듯이

나무가지의 새둥지는 주인을 떠나보내고 그 빈자리에 겨울 찬 바람을 채워 넣는다..

그렇게 그냥 살아온 억겁의 세월을 보란듯이...

 

 

 

 

십여평 좁은 장터목산장 취사장..

자욱한 밥짓는 수증기 사이에 이미 한기는 사라지고 오히려 따뜻한 온기가 넘쳐난다..

 

술 한 잔을 마시며 잠깐 고개를 들어보니 바람재님 일행이 들어 온다. 모니터 속에서만 봐왔던 반가운 얼굴들...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이런게 사람사는 세상인가보다..

처음으로 보았지만 그동안 계속 만나왔던 사람들처럼....

언젠가 지리산 자락에서 만나게될 줄 알았지만, 막상 보게 되니 반갑기 그지없다..

또 바로 곁에는, 나그네님을 잘 알고 계시고 내 블방을 가끔 방문하셨다는 수니님도 만나는 행운까지...

 

소박한 오찬 시간에 정이 넘친다.

건너한 산객에게서 건네받는 술 한 잔에 세상의 모든 시름과 걱정을 내려 놓는다..

 

 

 

 

 

 

 

 

 

 

 

 

 

 

 

 

 

 

내 두 눈으로 본 것처럼 시원하게 찍어낼 수는 없는 것일까?

주변이 막힌 사진틀 밖으로, 세상을 내 보내고 싶은 욕심에 ..

그것이 아마도 도시를 떠나 사람들을 산으로 내 모는 이유일게다..

 

 

 

 

 

일년간의 수많은 산행을 지리산 눈꽃 산행으로 정리해 본다...

손이 오그라질 정도로 추웠던 1월 덕유산 산행에서 부터 마지막 12월 지리산 눈꽃 산행까지..

산행을 통해서 수 많은 인연들을 만들었고, 좀더 자연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지난 1년간 보잘것 없는 "나의 작은 풍경사진"을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신묘년 한 해에는 가정에 만 복이 가득하시고

따뜻한 기쁜 일만 계속되시길 바래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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