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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방

癸巳年의 천왕봉

 

癸 巳 年 천 왕 봉

 

 

일   시 : 2013년 2월 10~11일 (구정 연휴)

산행지 : 지리산 천왕봉

코   스 : 중산리 - 칼바위 - 장터목대피소(1박) - 천왕봉 - 중산리

 

 

저 어렸을적엔, 설날이 되면 멀리 있던 형제자매 일가친척 온가족이 모두 모여

전을 부치네, 고기를 굽네, 숨돌릴틈없는 부뚜막과 온 집안은 그야말로 왁자지껄했었습니다.

아낙들은, 적당히 말라 꼬들거리는 가래떡을 팔목이 저리도록 썰면서도, 밤새 이야기 꽃을 피웠었고

향긋한 참기름 냄새와 가족들 웃음소리가 집안에 가득하던게 엇그제 같은데..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과 하루종일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다 들어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전이며 동그랑땡을 부치기가 무섭게 집어먹다가

혼이 나기도 하지만, 년중행사로 새 옷을 얻어 입고 기분이 최고로 좋았던 때..

설날 아침이면, 떡국도 먹는둥 마는둥 숫가락을 집어던지고 뛰어나와

옆집 이모네, 한복집 봉진이네, 신발가게 상선이네...온 동네를 휘~이 한바퀴 돌고나면,

두둑해진 주머니에 마음 뿌듯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일일생활권이라 해도,

바쁜 일상에 쫏기고 연휴가 짧아 명절에도 형제들 얼굴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형제들도, 조카들이 어릴때는 곧잘 부모님 뵈러 아이들 데리고 이 먼 곳까지 내려오곤 했었는데

자녀들이 결혼하고 손자들이 생기니 각자 친정과 시댁이 되어 또 하나의 가족 구성체가 됩니다..

별 수 없이, 멀리 사시는 부모님은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어쨋건 이번 설 연휴에는 좀 부지런을 떨었습니다..

이른 시간에 차렛상을 차리고 어머님께 새배하니

오십 넘은 아들과 며느리에게도 복돈을 주십니다..

공과금 납부하듯이 딸내미에게 새뱃돈 뜯기고 나니 별 할 일이 없어요..

그럴줄 알고 며칠 전에 미리 장터목대피소를 예약해 두었답니다.

다행히 설 연휴라 대피소 예약은 어렵지 않았답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도착한 중산리 주차장은

우리같은 처지의 몇몇이 보이긴합니다만, 참 한산합니다..

명절인데도 다행히 문을 연 식당이 있어 오늘도 예외없이 파전에 동동주 한잔 마시고

바쁠것 없이 천천히 산길로 들어갑니다..

 

 

 

 

네시도 안되어 도착한 장터목대피소..

자리를 잡고 거제와 부산에서 오신 옆자리 분들과 취사장에 내려가 술 한잔을 나눕니다.

이런 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로 분위기가 익어갈 때 쯤,

우리와 가까운 자리에 있던 젊은이들의 휘발유버너에서 불꽃이 천정까지 튀더니

패딩점퍼에 불이 순식간에 옮겨붙고, 그 일행이 불을 끈다고 자기 패딩에도 불이 옮겨붙고..

한순간 부주의로 취사장 안이 온통 아수라장이 된 위기의 순간에 

함께 술마시던 거제에서 오신 분이 소화기로 순식간에 화재를 제압했습니다..

취사장 안에 퍼진 소화기 분말때문에 술자리를 정리하고,

숙소로 올라와 남은 술 한모금으로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화기 조심.. 새삼 느꼈습니다..

 

 

 

 

 

 

부시럭대는 소리, 코고는 소리에 도통 깊은 잠에 들 수가 없어,

4시에.. 주섬주섬 짐을 꾸립니다...

누룽지를 끓여 따뜻한 숭늉으로 속을 달래 해장을 하고 

까만 하늘에 점점이 빛나는 별과 함께 길을 걸었습니다.

휘몰아치는 바람은 시베리아 혹한을 연상시키고,

하늘엔 잔뜩 화를 품은 것 같은 검은 구름띠가 점점 몰려듭니다..

일출을 보고 싶은데, 아직 덕을 덜 쌓은건지..

 

 

 

 

주변이 밝아지고,

붉은 기운 속에 둥근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자

검은 어둠에 숨어있던 산군들과 봉우리들도 여기저기서 슬그머니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S라인 아름다운 허리선을 뽐내는 경호강은 햇살에 반짝이고,

먹이를 찾아나선 까마귀 한마리 고사목 주변을 서성입니다.

살을 에이는 찬바람은, 감탄을 연발하며 사진을 찍어대던 산객들을 몰아냅니다..

 

 

 

 

 

 

 

 

 

 

 

 

 

 

 

 

 

 

 

 

 

 

 

 

 

 

 

 

 

 

 

 

 

 

 

 

 

 

 

 

 

계사년 초하루부터 이틀을 산에서 보냈으니

올 한해 열심히 산을 들락거릴것은 자명해 보이고,

개인적으로 소원하는 몇가지 일들이 잘 풀리도록

열심히 살도록 하겠습니다..

 

제 블방을 찾아주시는 님들도 즐겁고 행복한 계사년이 되시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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