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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방

만복대의 四季

만 복 대 ...

 

  

 

일   시 : 2011년 11월 26~27일 (1박2일)

산행지 : 지리산 만복대

코   스 : 상위마을 - 묘봉치 -만복대 - 만복대핼기장(1박) - 다름재 - 엔골 - 산동수원지 - 월계 - 상위마을

 

 

절기로는 소설을 지나 대설이 낼모레인 11월 하순.

 

옛날 우리 어렸을적 이맘때 쯤이면

동네 어귀에 싸리나무 빗자루만한 개구장이들은 다 모여서, 동네를 가로 지르는 개울로 썰매타러 다니던 계절..

개울이래야 애들 오줌줄기만한 물이 졸졸졸 흐르고, 간혹 얼음 사이로 군데군데 마른 풀이 삐쭉삐쭉 돋아있는,

기껏해야 어른 두걸음이나 될법한 실개천..

쓰다 버린 녹슨 무쇠칼이나 운 좋은 놈은 철사를 주워 썰매날을 만들고, 

부지깽이 나무작대기로 썰매치기를 만들어도 신나기만 하던 시절.. 

가끔, 은근히 앙숙인 녀석과 나란히 썰매를 타다가 경쟁이라도 붙는 날에는

앞도 안 보고 얼음판을 질주하다 삐죽이 삐져나온 마른풀에 걸려 앞으로 꼬꾸라져 코가 주먹만하게 부어 올라도,

깨진 얼음 사이로 발목이 빠져 신발 속으로 물이 들어 발이 퉁퉁 부어 올라도

집에 가 야단맞을 걱정 보다는 누가 "집에 가자"할까, 그게 더 걱정이었던 시절..

 

콧물이 흘러 내리면 옷소매에 쓰~윽 닦아 옷마다 팔목이 반질반질 윤이 났던 시절..

오줌을 누면 바로 언다는 말에, 어른 키만도 못한 낮은 다리 위로 올라가 전깃줄에 참새들 마냥 쪼르르 서서

진짜로 얼어버리는지 확인하다가, 결국엔 어느놈 오줌발이 더 센지 숫놈들의 본능에 부르르 온 몸을 떨던 시절..

바지춤을 내리고 개울 아래로 오줌줄기를 갈기던, 추우나 더우나 아무 상관없던 그 시절... 

 

그 시절, 요맘때 쯤이면 찬바람은 문틈에서 쟁쟁거리고 온 세상이 하얗던, 완전한 겨울이었는데.. 

 

 

한낮 기온이 17도를 웃도는 포근한 주말이었습니다..

감나무 잎새 사이로 포근한 햇빛이 쏟아지는, 참으로 걷기 좋은 날..

푸른 풀밭과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보면서, 나물바구니 옆에 끼고 개울을 건너는 아가씨가 떠오르는, 봄같은 날...

상위마을에서 만복대를 올라 다름재를 돌아 내려오는 1박2일 산행을 다녀왔습니다.. 

 

 

매화꽃 만발하던 꿈속같던 5월에, 노란 꽃을 지천으로 피워내던 산수유나무는

지리산의 사계절을 자양분으로, 어느새 풍성한 결실을 만들어내니..

산에서 주워온 돌로 얼키설키 이어낸 담벼락에 올라 서서, 노인은 굽은 허리에도 가을걷이에 바쁩니다.  

나고 자란 지리산 골짜기만큼 이마에 깊게 패인 늙은 농부의 주름을 타고 흐르는 땀은 빨간 산수유 열매 위로 떨어지고,

지나던 길에 들여다 본, 어느 집 앞 마당 우물가... 

무다라이와 대나무 채반에 널린 셀 수도 없이 많은 김장배추는, 

봄볕같은 날씨에, 간수를 빼고도 벌써 꼬들꼬들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엇그제 내린 제법 겨울다운 눈에 이 골 저 골 크고 작은 골짜기마다 물이 많이 불어 있었습니다.

상위마을에서 묘봉치까지는 최근에 새로 개방된 길이라서,

아직은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으니 반질반질 윤이 나지 않아 좋았고,

햇살 받는 돌 위로는 잔풀이 자라고 음지의 돌 위로는 푸른 이끼가 자라는, 벌써 봄을 보았답니다..

마을을 벗어나 조금오르니 잎을 떨군 나무와 갈색 낙엽으로 덮힌 푹신한 가을 길을 걷게 되네요...

따뜻한 기온에 몇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땀을 한됫빡흘려봅니다..

여름을 느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서 옅은 안개가 끼니 조망은 별로였습니다.

며칠 전, 덕유산에 눈이 내렸다는 말은 남의 집 이야기로 귓등으로 들었는데,

묘봉치에 올라 응달에 남아있는 잔설을 보고서야 겨울이 왔음을 생각합니다.

 

 

 

 

 

 

 

 

 

 

 

 

해가 넘어갑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딱 저만큼..

옅은 안개 장막으로 감싸니, 태양인지 달인지.. 일몰인지 일출인지....

주변을 연분홍빛 파스텔톤으로 물들이더니 해는 넘어갑니다.

 

 

 

 

 

 

 

 

 

 

 

 

다행히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 헬기장에 텐트를 치니

마음은 서북능선을 통전세라도 낸 것 같았습니다.

한겨울 허리까지 쌓인 눈 속은 아니어도, 가을 억새가 만발한 만복대의 가을이 아니라도

철쭉만발한 봄도, 푸른 초원과 같은 여름 한날의 만복대는 아니라도

충분히 즐거운 첫날 산행이었습니다..

 

 

 

 

 

 

 

 

다음 날 일출 모습입니다...

일출 시간이 이미 지났어도 주변은 온통 깜깜한 밥중과 같았습니다.

어제 일몰처럼 태양은 깊은 구름에 쌓여 도통 모습을 드러내주지를 못하더니, 딱 저만큼만 보여주었습니다.

잠깐 붉은 기운을 내 보이더니 반야봉 허리춤으로 태양이 떠 올랐다.

 

 

 

 

 

 

늦으막이 아침을 먹고 아니다녀간듯 깔끔하게 뒷정리를 하고서 

박지를 떠나 다름재 방향으로 이튿날 산행을 시작하는데,

응달에 남아있는 잔설은 아이젠을 준비하지못한 산객들의 발목을 붙잡습니다..

맷돼지의 흔적이 가득한 다름재 바로 못미쳐 좌측 엔골로 내려서니

길다운 길은 사라졌지만 계곡 지점까지 잡목이 없는 편안한 하산길을 걸었습니다.

 

 

 

 

엔골은 길고 좁지만, 구불구불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이틀간의 산행의 피로를 깨끗하게 씼어주었습니다,.

골짜기 하류에서 떡국과 훈제오리고기로 이틀간의 산행을 마감하는 오찬을 즐겼습니다..

 

 

 

 

 

 

 

 

산수유 나무가 가득한 마을 어귀에, 돌담에 걸어놓은 포근한 햇살과, 

들풀만 가득한 작은 밭고랑 사이에 피어나는 아지랑이에게서 봄을 만났습니다..

 

골짜기를 가득 메운 성하의 물소리와

한피치 올릴때마다 흘러내리는 땀방울에서 여름을 느꼈습니다...

 

리산 정수리를 떠나, 발끝 섬진강까지 이어지는 물줄기를 따라 흐르다 멈추다를 반복하는 가을 낙엽들. 

아직 지지못한 단풍잎과 가을걷이를 마치지 못한 산수유와 감나무에서 가을을 보았습니다...

 

서설이 내려 흰 옷으로 갈아입은 서북능선의

올겨울 첫대면한 가슴시린 눈에서 겨울을 보았습니다....

 

이틀 산행에 사계절을 다 만난것도 행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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