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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방

지리산 왼골

지 리 산    왼 골

 

 

일   시 : 2011년 7월 31일 (일요일)

산행지 : 지리산 왼골

코   스 : 삼정마을 - 이현상격전지 - 왼골 - 토끼봉 - 명선봉 - 명선남릉 - 이현상아지트 - 삼정마을

함께한 이 : 부산의 이장네 부부와 우리 부부...

 

 

 

새벽 이른 시간에 화개동천을 끼고 의신으로 접어드는데,

빈틈없이 주차된 차량 행렬을 보고서야, 아~~ 지금이 피서철이구나 생각합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산을 찾아 떠나게 되니 새삼 휴가철을 느끼지 못한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흐르는 세월을 깜빡하고 지내는 일이 잘한 일인지는 .. 글쎄요....

 

 

휴가라하면 누구나 여름을 떠올리고, 놀거리와 갈만한 곳을 찾아서

신문을 뒤적이거나 인터넷 바다를 헤메고 있을지 모를 일인데,

숨쉬기 조차 힘든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동해바다, 꽉막힌 도로,

사람들 무리에 쉴 틈도 없는 공간, 치솟는 바가지 요금...등등..

즐거움보다 짜증이 많았던 과거 휴가의 기억에, 올 해는 다른 계획을 세워야겠다 생각했다면 이 곳은 어떠한가요..

지리산을 병풍삼아 칠불사와 쌍계사를 아우르는 지리산 골짝..

의신과 삼정마을... 그리고 그 물줄기..

 

 

 

 

지리의 깊은 계곡은 인간 세상과 빗겨 서 있어서 더 빛이나는가 봅니다.

짙은 이끼와 푸른 청정수, 그 무엇 하나도 신선하지 않은게 없으니,

굳이 이원규 시인의 "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선경을 논하라 하면 이런 풍경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의신마을은 가슴시린 역사의 현장입니다.

한국전쟁과 남부군, 동학난.. 등등..   좌 , 우의 이념싸움에 휘둘린 역사..

빨치산 이현상의 아지트와 격전지가 있던 곳, 국군 토벌대가 끝까지 저항하던 이현상을 사살한 곳..

이 역사가 흐르는 계곡이 빗점골입니다..

 

의신마을의 몇 안되는 주민들은 예로부터 약초를 캐고 양봉과 고로쇠 작업으로 삶을 이어온 소박한 마을인데,

이 의신마을을 따라 4km 가량 임도를 오르면 벽소령으로 올라가는 등산코스가 갈라지는 마을이 다시 나오고,

바로 삼정마을입니다.

 

 

 

 

삼정마을에서 벽소령 등산로와 반대 길로 계곡을 따라 오르면 빗점골입니다..

빗점이란, "여러 비탈의 밑자락이 한 곳으로 모여드는 곳.." 이란 순 우리말인데,.

이 말 뜻대로 빗점골은 좌측으로 부터 왼골, 산태골, 절골 그리고 천내골과 같은 부챗살 모양의 여러 물줄기가 모여들고.

그 물줄기가 다시 흘러, 큰세개골과 작은 세개골이 만들어낸 대성골과 합쳐 화개계곡을 이룹니다..

 

빗점골은 지리산의 등허리를 타고 흘러든 맑고 깨끗한 청정수가 모여 있어 그 청량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고,

오한이 날 정도로 시원함이란,... 그 물에 발 담궈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왼골의 산행길은 지리산 깊은 계곡의 전형이라할 정도로 원시의 나무와 짙은 숲,

그리고 푸른이끼와 신선한 공기, 그 모든 것이 감동입니다..

 

 

 

 

 

 

산 길, 특히 길이라 말하기 어려운 지리산 깊은 계곡을 치고 오르면서, 문득 "길"을 생각해 봅니다. 

루쉰의 거창한 말을 빌리자면 "길의 역사에서 희망을 본다"고 했답니다..

희망이란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인지라., 우리네 길과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길이란 것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고, 수많은 인간이 걷다 보니 생겨난 산물이라

사람의 왕래가 없으면 다시 없어지기도 한다는 거지요.. 

가끔 빨치를 하다 본의 아니게 새로운 길을 만들기도 하는데, 희망의 싹을 만든거라고 혼자 위안을 삼습니다..

 

 

 

 

 

 

 

 

 

 

 

 

 

 

 

 

 

 

 

 

 

 

 

 

소설가 김별아씨는 대간종주 몇 시간만에 나름대로 힘든 산행의 어려움을 이어가면서,

걷는다는 것은 많은 생각으로 무엇을 체워 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일상의 혼돈을 머릿속에서 지워내는 과정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멋진 말이지요..

 

산 길을 걸을때 가끔 섬광처럼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지혜가 떠 오르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아무 생각없이 신발코만 바라 보고 걸으며 비움의 철학을 배운다고나 할까요.. 

산 길을 걸으며 무얼 얻겠다는 기대는 애초에 집에 두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길을 걷는 조건으로 반드시 좋은 동행자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들 합니다..

많은 생각과 삶을 누르는 고민과 고통은 잠시 잊게 하고, 정신건강에 좋은 생각을 위해서는

꼭 좋은 동행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만..

꼭 그렇게 생각할 것만도 아닌 것이....

오히려 혼자 걷는 외로움이 더 부담스럽기도 하거니와

맘에 맞는 동행이 있어 일상의 짐을 나눌 수 있다면 더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여느때처럼 좋은 동행자가 있어 기쁨이 배가 되었답니다.

소띠 인생의 화두 "무뇌(無腦)"를 논하면서...

 

 

 

 

무뇌(無腦)...

나이들어 깜빡깜빡 잊고 사는게 많아지니, 뭘 까먹는 것도 자연스럽답니다.

세상사에 시달려 고민해야 하거나 많은 생각을 해야할 때 산을 찾는다지만

신이 인간에게 보내준 것중 가장 좋은 선물이 망각이라 하지 않았던가요.. 

힘든 산길을 두어시간만 걷다보면 아무 생각도 없어지고 그야말로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곤 합니다..

정신빠진거지요..

이장네랑 오름길 내내 요런 이야기하며 웃고 올랐답니다..

 

힘든 산행이었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그 곳으로 가고 싶은 건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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